강화산성(강화)
남문→남산(223m)→서문→북문→북산(140m)→동문→견자산→남문
강화산성은 사적 132호로 고려 고종 19년(1232년)에 강화도로 천도한 뒤, 몽고에 대항하기 위해 흙으로 쌓은 토성이다.
내성은 개경으로 수도를 옮김과 동시에 헐렸고 조선 초에 이르러 새롭게 토성으로 개축되었다. 그 후 인조 15년(1637년) 병자호란 때 대부분 파괴되었던 것을 효종 3년(1652년)에 일부를 개축했다.
조선 숙종 3년(1677)에 강화 유수 허질이 전면을 돌로 새로 쌓고 뒷면은 흙으로 개축· 확장하기 시작, 조선 숙종 37년(1711년)에 강화 유수 민진원이 34년 만에 강화산성을 완성했다.
4대문, 4소문, 2수문, 9개의 성곽, 4개의 성문장청이 있었고 당시 북문에는 누각이 없었으나, 정조 7년(1783년)에 강화 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라고 하였다. 동문은 '망한루', 서문은 '첨화루', 남문은 '안파루'라는 각각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서문 옆에는 강화부의 군사들이 훈련하던 곳인 연무당의 옛터가 남아있는데 1876년 한·일 수호조약을 체결한 치욕의 장소이기도 하다. 외성은 고종 24년에 축조하였으며 현재는 해안선을 따라 남아있는 5진, 7보, 8포대, 54돈대가 강화국방유적지로 관리되고 있다.
산행경로(남문에서 출발, 시계방향)
오늘은 미답지인 강화산성걷기에 나섰다. 남문을 들머리로 남산과 북산, 견자산을
한바퀴 돌면 자연스레 산성을 일주하기 때문에 유적지 답사가 절로 되는 셈이다.
강화종합전시관(문화원) 정류장에서 하차를 하니 남문이 지척이다.
남문(안파루 晏波樓)
남장대로 이어지는 성곽
성곽을 따라 오르면서 뒤 돌아본 모습,
맞은편 둥글게 보이는 산이 현충탑이 있는 견자산이다. 견자산은 고려 고종이 친아들 안경공 창(淐)을
살아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는 원나라에 보내고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올랐던 곳,
궁궐에서는 아무리 왕자를 생각해도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는데 이 산에만 오르면
왕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타난다하여 정자산이라 불리던 이름이 아들을 본다는 뜻으로
‘볼 견(見)’, ‘아들 자(子)’자를 써서 견자산(見子山)이 되었다고 한다
편안한 등로가 이어지고
조금 더가니 학생들이 달리기훈련을 하러 왔는 모양이다.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올려뛰고 내려뛰기를 한다
성곽위로 보이는 남장대는 한폭의 그림이다
가운데는 빙판이다..ㅎㅎ
남산(223m)위에 있는 강화산성 남장대.
2008년에 발굴조사와 기술자문회의를 거쳐 2010년에 복원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남장대에서 바라본 한강하구와 강건너 황해남도 개풍군
강화읍소재지
문수산성이 있는 김포 문수산
강화읍과 문수산자락, 그리고 유도와 강건너 북녘땅
목조데크를 넘어 가면 국화리 공동묘지와 혈구산으로 가는 길로 연결된다
봄이면 선홍빛물결이 넘실대는 곳. 진달래산행으로 북적대는고려산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겠지...
이렇듯 멀리까지 잘 보이는 곳이니 장대를 설치했겠지...
남산(남장대)~서문구간
저 아래 서문이 보이고
서문은 12시방향 도로건너에 위치
서쪽에 위치한 국화저수지.강화나들길은 남산에서 성곽을 넘어 국화저수지변으로해서 서문으로 연결된다
빙판이라 난간을 잡고 조심스레 내려왔다. 휴~!!
서문으로 이어지는 성곽
돌로 쌓아 만든 강화석수문(유형문화재 30호).부근에 그 옛날 군사를 훈련시켰고 구한말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장소인 연무당옛터가 있다는데 모르고 지나쳤다
강화산성 서문(첨화루 瞻華樓)
서문(첨화루) 앞모습
서문(첨화루) 뒷모습
방금 내려온 남장대(노란 원표시)와 성곽
정수장입구를 거쳐 강화여고숲길 쪽으로..
한동안 부드러운 능선길이 이어지고
저기는 진달래로 유명한 혈구산(좌)과 고려산(중앙)
좌측 송림을 지나 능선위로 보이는 성곽길을 걷게 된다
북문으로...
이 정도면 비교적 원형보존이 잘 되어있는 셈이다
이어자는 솔숲길
강화산성 북문(진송루 鎭松樓)
관청리 관아와 북쪽 송해면을 연결하는 고갯길에 설치된 북문주변의 성곽
저 위가 북장대터
북장대터에서 조망한 혈구산(좌)과 고려산
이번에는 고려산과 별립산(우)
별립산과 봉천산이 차례로 이어지는데 그 모습이 보기가 좋다
북장대터(북장대지).
남산의 남장대와 달리 복원을 기다리고 있다. 북산은 저리로 조금 더 가야한다
북장대터와 가까이 보이는 김포 문수산
강화도 북쪽 송해면 대산리일대 평야지대.
뒤로는 한강하구와 북녘땅
당겨본 모습(우측부분)
당겨본 모습(좌측부분)
당겨본 모습(중앙부분)
강화군에서는 이정표를 비롯해 안내표지판 등 산성안내에 소홀하다.
산성일주를 하다가 길을 못찾아 포기하고 놀다가는 사례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새해에는 보다 신경을 많이 써 주기를 바란다.
이곳이 북장대터임을 알려주는 북장대 한시
북장대터에서 북산으로 이어지는 성곽
북산에서 본 모습인데 혈구산에서 흘러내리는 산줄기와
우측 고려산의 산그리메가 성곽길과 잘 어울리지 않는가...!!
유도와 강건너 북녘땅이 가까이 있다
강화도와 김포, 한강하구와 유도. 그리고 북녘땅...
북산에서 내려가는 성곽길
남산, 혈구산, 고려산 그리고 국화저수지
정자사거리.
↑ 고려궁지 ← 동문 → 강화산성 ↓ 강화산성
산성복원을 기다리는 구간
동쪽에 있는 문수산(문수산성).
문수산성은 강화도의 갑곶진을 마주보고 있는 해발 376m의 문수산의 험준한 정상부에서 서쪽의
산줄기를 따라 내려가 문수골과 산성포의 능선을 포용하여 해안지대를 연결한 포곡식 산성이다.
서쪽으로 강화를 건너는 길목을 장악할 수 있는 요충지로 고려말에는 몽고군이 이산에 올라 강화도를 바라보고
도강을 시도하기도 했던 곳이다. 그 당시 고려의 왕과 수도가 강화로 옮겨간 상황이기 때문이다.
문수산성은 강화도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도 입구를 방어하기 위한 최고의 군사요충지였다.
관아가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 현충탑이 있는 견자산과 연결된다.수령 600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인데 보호수로 지정, 관리 중이다
강화산성 동문(망한루 望漢樓)
강화중학교와 뒷편으로 북산(140m)
강화읍과 고려산
현충탑.6.25전쟁때 전몰한 강화출신 군경 및 유격대원 1,033신위의 위폐를 각인하여 모시고 있다는 점이 다른 고장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기도 하다
이렇게해서 강화산성을 한바퀴 돌아왔다. 강화도는 예나 지금이나 군사적으로 요충지라는 생각, 유적지관리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고려궁지와 성공회성당, 외규장각, 또 한강하구의 연미정이 있는 월곶돈대 등을 보기위해 날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늦은 점심을 먹으러 발길을 돌린다
□ 산행일시 : 2015. 1. 8(목). 맑음
□ 동 반 자: 나홀로
□ 산행거리,시간 : 7.2km(휴식시간 포람, 3시간15분)
□ 산행경로 : 남문→남장대(남산223m)→서문→북문→북산(140m)→동문→현충탑(견자산)→남문
가출(09:25)→남문(안파루10:35산행시작)→남장대(11:13)→서문(첨화루12:02)→강화정수장(12:12)→북문(진송루12:35)→북장대터(12:42)→북산(12;59)→동문(망한루13;28)→현충탑(견자산13;36)→남문(13:50산행종료)→귀가(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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